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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0 공짜 휴게공간

지하철 휴게공간에 앉는다. 서울시가 시민 전체를 위해서 마련한 공간이다. 이 공공 공간에 앉는 사람들한테 성공률이 높았는지 전도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구석 테이블에서 커피와 종이컵까지 마련해놓았다. 골전도 이어폰은 귀마개를 끼고 들어야 음악에 둘러싸인 느낌이 든다. 귀마개에 이어폰까지 단단히 무장하고 이슬아의 수필을 읽는다. 평안히 내 공간 내 시간을 즐긴다. 그 틈으로 누군가 비집고 들어온다. 전도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에메랄드색이라고까지 해도 좋을 초록 드레스를 입은 50대 여성 분이 '서현교회'라고 세련되게 디자인된 전단물을 내 손 바로 앞에 내려놓는다. 음악에 둘러싸인 내게는 괘씸하지만 편리하게도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뭐라 뭐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들리지 않는단 핑계로 가볍게 무시한다. 이슬아는 이제 일본 어느 지역의 온천을 즐기고 있다. 그렇지만 흐름은 끊겼고 내 새로운 흥미와 관심은 구석 테이블에 향한다. 저분들의 동기는 뭘까. 전도를 해야 하느님의 뜻을 널리 널리 알려야 천국 간다는 이기심일까. 나만 알기 아깝기에 행복하고 평안한 공간으로 초대하고 싶은 안주인의 마음일까. 그 무엇도 아니더라도 실제 지하철 이 공간에 앉아 그날의 설움과 외로움을 삭이지 못해 혼자 괴로워하고 있을 영혼에게 손 앞에 내밀어지는 그 초대장은 작은 위안이나마 됐을 수도 있겠거니 하며 이유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달래 본다. 난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곰곰이 되짚어본다. 조금 있으니 철판 깔고 나처럼 그들을 투명인간 취급하지 못한 다른 20대 친구들은 2차 급습을 당한다. 다시 다가오는 초록 드레스 찰랑거림에 그들은 쫓기듯 자리를 뜬다. 남은 건 아쉬운듯한 초록 드레스 여성 분의 손짓뿐이다. 그렇다. 이 공간은 모두를 위한 공간이 아닌 것이다. 앉고 버팅길 권리야 누구에게나 있지만 실질적 소유주이자 지배자는 전도사들이다. 그들은 아마 아쉽게도 놓쳐버린 포교 대상들을 작은 실패의 훈장으로 삼고 다음과 그다음을 기약하며 더 굳세게 마음을 먹었을게 분명하다. 좀 지나니 그들은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서로를 위한 기도를 해주고 있었다. 못된 충동이 치솟는다.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더 나에게 더 적극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말을 건다면 그들을 내 앞에 앉혀두고 못된 질문들을 해보고 싶다. 당신들 등쌀에 못 이겨 잠시 값싼 휴식이라도 취해보고자 이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한테 미안함 같은 건 느낀 적 없냐? 어찌 그리 뻔뻔하냐?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이 공간을 그렇게 독식하느냐? 그런 뻔한 질문부터. 당신들이 믿는 것 같은 전지전능하고 선한 하느님이라는 게 있다면 왜 이 세상의 불평등은 지속되는가? 왜 당신네 자식들 건강하고 성공하게 해 달라는 기도나 소망 따위는 귀 기울여주는데, 어디선가 굶어 죽고 있는, 제약회사가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 설정한 약값 때문에 약이 있음에도 질병으로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서 하늘님은 대체 뭐 하고 있는 거냐? 당신들이 선함의 탈을 쓰기로 작정했으면 지금 여기서 무얼 하는 거냐? 그런 억지스러운 질문들을 뱉어내며 스스로의 답답함을 해소하는 그런 상상이다. 그저 힘든 하루 잘 버텨내고 새로이 찾은 공동체에서 행복과 평안을 느껴 사명감으로 하나하나의 과업을 완수하는 게 다일 그런 평범한 사람들한테 평범하지 않은 거대한 질문들을 던지며 괴롭히는. 공짜로 휴식할 수 있는 그 공간에서 저열한 상상에 통쾌해하며 그렇게 휴식답지 않은 휴식을 취해본다.